"여기저기 쌓여 있는 유럽산 허브와 열대과일을 사용한 발가락만한 디저트케이크에 저항할 수 없는 것이 인간의 본성이고 따라서 인간인 나는 그것에 저항할 수 없으며 따라서 그것은 당연한 것을 넘어서서 당당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복권 당첨금을 투기산업에 투자하여 큰수익을 올려 삶의 질을 높이는 것이 정신이라는 것을 소유한 인간이 할 수 있는 것인가? 아니, 그것은 인간의 삶이라고 할 수 없다. 본능에 충실한 짐승의 삶일 뿐이다"
p59


"당황한 수정은 미나에게 너는 아일랜드 사람이니 아일랜드로 가버리라고 소리를 질렀고 그러자 미나는 수정의 홈페이지 방명록에 '그렇다 나는 아일랜드 사람이다' 라는 내용의 게시물을 오십개나 남겼다. 그때 오십개의 게시물을 지우느라 오른손 검지가 부어오를 정도로 쑤셨다는 데 생각이 미치자 새삼스럽게 화가 치솟은 수정은 벽장문이 고장나 미나가 벽장에 갇혀버렷으면 하고 저주하기 시작한다"
p61

창작과 비평사에서 신인문학상을 받은 김사과의 장편소설 "미나".

 

이 소설의 줄거리는 이러하다.

 

미나의 절친한 친구 수정. 수정이는 자신의 친구가 학업의 문제로 자살을 하자, 심각한 고민을 한 채 학교를 자퇴하게 된다. 그런 수정을 보면서 미나는 고뇌에 빠지게 되고. "왜 쓸데없는 감정을 갖고 우린 살아가야 하는가." 란 문제를 가진 채 미나는 수정에게 찾아간다.

 

중산층의 자녀들. 그리고 그 자녀의 일탈. 얼핏 보면 여고생의 성장소설임에 틀림 없는 이 소설의 결론은 가히 충격적이다 못해 무섭다. 그리고 섬칫하다.

 

문제는 바로 이것이다. 입시지옥이 끝없는 희생양을 만들어내고. 이런 획일화되고 기계적인 입시체계 덕분에 많은 이들이 감정을 잃고 살아간다는 것이다. 이런 무감각적인 사람들이 생겨남에 따라 사회는 더욱 획일화 된다는 것이 아닐까.

그리고 무가치적인 정보를 머릿속에 억지로 집어넣으며 희열을 느낄 지 모르는 학생들(시절을 보낸 우리들을 포함하여)은 점점 더 무감각해지고 결국엔 자신의 본질을 잊은 채 살아간다는 것이다.

 

이어폰을 끼며 자기만의 세상에서 살 수 있다고 생각하는 수정. 이런 수정의 손엔 칼이 들려 있었고 자신의 우상(미나)이 문제에 빠지는 것을 방관해서는 안될 것이라 생각했을 것이다. 공부로써 성공을 해야 하는 자신에게는 슬픔의 감정따위 사치였고, 그래서 친구 잃은 슬픔에 젖은 미나가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이었다.

 

"별안간 수정은 진시황의 분서갱유 사건을 진심으로 이해할 수 있게 된다. '그래. 시대를 초월하여 그런 쓰레기들이 존재했던 거야. 이해해. 완전히 이해해. 얼마나 괴상한 책을 읽으며 얼마나 괴상한 사상을 주고받았을까. 책이라면 문제집만 빼고 다 필요없어. 다 불태워버려야 해. 그러고 보니 문자시대가 끝나고 영상시대가 찾아왔다니 얼마나 다행인가. 가만있어도 그런 쓰레기들은 아무 힘도 없이 죽어버릴 테니 다행이다."
p271

 

 

요즈음 우리 주위에서 볼 수 있는 문학가들의 소설 문법구조와는 판이하게 다른(인터넷 소설과도 매우 흡사한) 이 소설은 우리들의 일상적인 대화체가 그대로 묘사 되어있다는 것이 참 흥미로웠다.

 

"미나 술 먹이지마."

"내 가먹 고 싶어서먹 는 거야내 가."

미나의 혀는 마비된 채 늘어진다. 정우가 비닐봉지 안을 들여다본다.

p.37

 

"뭐 해?"

"담배 내놔 담배."

"여깄는데." 김별이 가방을 가리킨다.

"아 씨." 수정이 담배를 꺼내 불을 붙인다. "짜증나."

"왜?"

"몰라. 그래서 더 짜증나."

"인생이 원래 그런 거야."

"내 인생은 안 그래."

p.99

 

미나와 민호가 서로를 쳐다본다.

"뭐야 저거." 미나가 말한다. 그리고 바닥에 흥건한 우유를 본다. "씨발년 지금 이거 뿌려놓고 도망친 거야?"

"야 쫓아가봐." "아 왜?"

"그냥 저렇게 가게 놔둘 거야?"

"아 그게 뭐 어때서."

"그러지 말고 좀 쫓아가봐. 쟤 좀 이상해."

"아 뭐가 이상해. 쟤 원래 저래. 원래 조온나 이상해. 아 나 그리고 다 젖었어. 엉덩이가 척척해서 못나가!"

p.172

 

다른 소설에서는 비교적 얌전한(?) 말투가 씌어졌다면, 이 소설에서는 우리들의 대화가 여과없이 드러났다는게 참 흥미로웠고 그리고 결말에 이르기까지 참 많은 문제를 고민한다는것 또한 흥미로웠다.

 

 

인간은 과연 감정 없이 살아갈 수 있을까. 자신의 더럽혀진 우상을 자신 손으로 스스로 파괴함으로써 우리가 취할 수 있는 이익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슬픔이란 무엇이고, 그리고 우리들의 관점으로 보는, 우리의 관점에서 벗어난 것들은 과연 무엇이 되는 것일까.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해준 책이었다.

 

**덧붙여서

책을 빨리 읽는 나 였지만, 새로운 형식의 소설이기에 그런지 웬지 이 책은 읽는 속도가 더뎠다.

미나
카테고리 소설
지은이 김사과 (창비, 200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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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생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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