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C통신에 글을 올리면서 시작된 퇴마록. 그리고 이어진 왜란종결자, 파이로 매니악. 치우천왕기...
이우혁은 이영도(드래곤 라자)와 전동조(묵향)와 함께 국내 판타지 시장의 주름을 잡고 있는 인기 작가이다.
이우혁의 특징으로는 엄청난 자료 수집 능력을 손꼽을 수 있는데, 이는 그의 소설을 보면 자세히 알 수 있다. 전 세계에 존재하는 수많은 심령현상들(퇴마록)과 자신의 전공을 한껏 살린, 사실 섬뜩하기 그지 없는 사제 폭발물을 이용한 살인(파이로 매니악), 그리고 인간 이순신을 재해석하고 그 때 당시의 거북선을 나름대로 재조명하기도 하며(왜란종결자) 우리의 자랑스러운 고대의 영웅 이야기를 담은 치우천왕기까지.
이 소설들을 보면 단지 이우혁은 대단하다는 소리밖에 나오지 않는다.
"치우"라는 말은 우리는 어디에선가 적어도 한 번 쯤은 보았거나 들어보았을 것이다.
2002년의 월드컵때 우리는 귀신 형상을 한 붉은 악마의 모습이 담긴 수건이며 깃발을 나부끼며 우리의 축구 선수를 열광적으로 응원하기도 했고 좀 더 나아가서는 한옥의 처마 끝에서도 귀신 모습의 기와 막새(처마 끝을 잇는 수키와)를 보기도 했을 것이다. 이것이 바로, 치우의 모습이다.
치우천왕기는 단군 고조선 시대, 즉 신석기 시대의 말기이며 또한 청동기 시대가 막 시작된 시점에서 이 이야기는 시작된다. 대략 5천년 전의 이야기인 셈이다.
그렇다고 해서 모든 등장인물이 머리가 부스스하고 옷이라고는 가죽쪼가리로 사타구니만 가렸으며 돌멩이로 사슴이나 쳐 죽이는 시대의 이야기는 절대로 아니다. 이 이야기는 소설이고, 소설이란 어디까지나 허구의 이야기이므로 이 소설이 역사의 모든 사실이라고 생각해서도 안되며 말도 안된다고 트집을 잡아서도 안되는 것이다.
이하는 스포일러 영역
소설의 주인공은 희네(치우천)와 나래(치우비)의 이야기로 시작된다.
닮지 않은 쌍둥이로 태어난 이 둘은 참으로 매력적인 인물이다. 형인 희네는 수려한 외모에 투명한 피부, 낭랑한 목소리, 현명한 머리, 훤칠한 키 등, 말 그대로 꽃미남인 셈이다. 그러나 치명적인 단점이 있으니, 어려서부터 앓고 있는 병으로 인하여 몸이 매우 약한. 그런 인물임과 동시에 동생인 나래 역시 같은 피를 물려받은지라 외모에도 전혀 굴하지 않는다. 그러나 어려서부터 힘을 타고난데다가 "아홉구비"라는 약초의 힘으로 그 힘을 증폭하였으니 천하제일의 장사임에 틀림 없다.
희네와 나래가 성인이 될 무렵, 태산에서는 태산회의가 열리게 되었고 드넓은 땅 위의 수많은 부족들은 이 태산회의에 참석하게 된다. 희네와 나래가 속한 부족인 "주신"으로부터 그 주신과 숙적인 지나족, 말걀족, 몽골족 등 밑도 끝도 없이 많은 부족들이 모이게 된다. 그러면서 이들은 우연한 기회에 태산회의에 참석을 하게 되고 그 태산회의에서 자신들의 뜻에 맞는 다른 부족의 동지들을 찾게 된다. 자신들의 뜻이란, 이미 썩어빠진 "주신"제국을 아예 새로이 갈아 엎어버리려는 뜻이다. 그러나 그런 동지들을 찾음과 동시에 불행이 떨어졌으니, 사막의 한가운데에 그 주인공이 버려지게 된다.
사막의 한가운데에 버려지기 직전에, 한웅으로부터 새 이름을 하사받으니, 희네는 치우천으로, 나래는 치우비란 이름을 갖게 된다. 죽음의 사막에서 동료들의 도움으로 빠져나오고 치우천은 새로운 부족을 세우게 된다.(세우는 도중에도 엄청나게 많은 동료들을 얻게 된다.) 주신을 제외한 다른 부족은 돌을 갈아 만든 신석기를 사용하는데 반해 주신족은 청동으로 만든 무기를 사용한다. 이런 청동 무기를 치우천은 대량으로 구하여 자신의 새로운 부족원들에게 나눠주니, 많은 이들이 치우천의 부족을 "작은 주신"으로 칭하게 된다.
이윽고 뜻이 되었다고 생각을 한 치우천은 자신의 부족원을 이끌고 주신으로 돌아간다. 이 과정에서 주신과 작은 주신간의 엄청난 혈전이 있었지만, 그리고 곳곳에서 새어나가는 치우천의 엄청난 작전으로 작은 주신의 치우천은 진퇴양난의 길에 가로설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오래전부터 자신을 도와준 "맥달"의 도움으로 그 혈전에서 승리를 거두게 되었고, 치우천은 주신의 새로운 신흥 귀족으로 올라설 수 있게 된다.
이무렵 치우천은 작은 주신에 속한 모든 식구들을 주신에 모두 불러들이는데, 여기엔 자신과 함께 사막을 건넜던 소녀(素女)도 속해있으며, 이 소녀와는 작은 주신을 세울적에 결혼을 한 사이었다. 그러나 여자의 질투심이란 한도 끝도 없는지라 치우천과 맥달의 사이를 의심한 소녀는 치우천을 무참히 내버리고 유유히 사라진다.
사라진 소녀는 치우천에게 엄청난 선물을 안겨주니, 이것은 바로 주신 내의 가장 큰 권력을 행사하고 있는 자신의 외할아버지인 고시율률의 목. 그리고 주신은 엄청난 충격의 도가니로 빠져들게 된다. 그리고 치우천은 행방불명이 된다.
등장인물도, 이야기의 배경도. 그리고 치우천의 전술도 모두 스케일이 전혀 다르다. 뒤통수를 때리는 반전이 매 장을 넘나든다. 그리고 흥미로운 옛 인물들의 이야기들. 방중술을 쓴 소녀가 등장을 하는가 하면 징기스칸의 먼 선조뻘인 보돈챠르와 우리 한국의 귀신들을 총칭하는 이매망량(魑魅魍魎)의 원 뜻인 리미, 삼국지에도 등장한 축융부인의 선조뻘인 축융. 그리고 우리 한국에서 쓰이는 4방위신. 백호, 청룡, 주작, 현무의 원 뜻, 번개범, ???(아직 소설내에 등장하지 않았다.), 붕, 첸누 등 이들을 알아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그리고 이우혁의 소설 특성상, 그리고 이 소설의 특성상 대규모 전투 장면들의 묘사가 매우 뛰어나며 각 부족의 특성들 또한 뛰어나기에 그들 부족원들의 행동들을 지켜보는 재미로도 쏠쏠하다.
현재 9권에서 나오지 않은 지 3년이 되어가지만. 곧 10권과 11권이 동시 출간됨과 동시에 마지막편이 될 것이라 하니, 조금만 더 참으면 귀한 소설의 끝을 볼 수 있을 것이다.
누가 그랬던가, 이우혁의 소설을 읽는 것은 인내심의 한계를 시험하는 것이라고 한 것을.
물론 이 글에서는 적지 않았지만, 내가 쓴 저 글은 단순한 줄거리에 불과하다는 것. 그러나 책을 읽으면 감동은 두배로 된다는 것. 이 점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이 책을 읽음으로 난 책을 천천히 읽어야 한다는 진리를 배우게 되었다. 연재 소설은 보석과도 같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