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저기 쌓여 있는 유럽산 허브와 열대과일을 사용한 발가락만한 디저트케이크에 저항할 수 없는 것이 인간의 본성이고 따라서 인간인 나는 그것에 저항할 수 없으며 따라서 그것은 당연한 것을 넘어서서 당당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복권 당첨금을 투기산업에 투자하여 큰수익을 올려 삶의 질을 높이는 것이 정신이라는 것을 소유한 인간이 할 수 있는 것인가? 아니, 그것은 인간의 삶이라고 할 수 없다. 본능에 충실한 짐승의 삶일 뿐이다"
p59
"당황한 수정은 미나에게 너는 아일랜드 사람이니 아일랜드로 가버리라고 소리를 질렀고 그러자 미나는 수정의 홈페이지 방명록에 '그렇다 나는 아일랜드 사람이다' 라는 내용의 게시물을 오십개나 남겼다. 그때 오십개의 게시물을 지우느라 오른손 검지가 부어오를 정도로 쑤셨다는 데 생각이 미치자 새삼스럽게 화가 치솟은 수정은 벽장문이 고장나 미나가 벽장에 갇혀버렷으면 하고 저주하기 시작한다"
p61
창작과 비평사에서 신인문학상을 받은 김사과의 장편소설 "미나".
이 소설의 줄거리는 이러하다.
미나의 절친한 친구 수정. 수정이는 자신의 친구가 학업의 문제로 자살을 하자, 심각한 고민을 한 채 학교를 자퇴하게 된다. 그런 수정을 보면서 미나는 고뇌에 빠지게 되고. "왜 쓸데없는 감정을 갖고 우린 살아가야 하는가." 란 문제를 가진 채 미나는 수정에게 찾아간다.
중산층의 자녀들. 그리고 그 자녀의 일탈. 얼핏 보면 여고생의 성장소설임에 틀림 없는 이 소설의 결론은 가히 충격적이다 못해 무섭다. 그리고 섬칫하다.
문제는 바로 이것이다. 입시지옥이 끝없는 희생양을 만들어내고. 이런 획일화되고 기계적인 입시체계 덕분에 많은 이들이 감정을 잃고 살아간다는 것이다. 이런 무감각적인 사람들이 생겨남에 따라 사회는 더욱 획일화 된다는 것이 아닐까.
그리고 무가치적인 정보를 머릿속에 억지로 집어넣으며 희열을 느낄 지 모르는 학생들(시절을 보낸 우리들을 포함하여)은 점점 더 무감각해지고 결국엔 자신의 본질을 잊은 채 살아간다는 것이다.
이어폰을 끼며 자기만의 세상에서 살 수 있다고 생각하는 수정. 이런 수정의 손엔 칼이 들려 있었고 자신의 우상(미나)이 문제에 빠지는 것을 방관해서는 안될 것이라 생각했을 것이다. 공부로써 성공을 해야 하는 자신에게는 슬픔의 감정따위 사치였고, 그래서 친구 잃은 슬픔에 젖은 미나가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이었다.
"별안간 수정은 진시황의 분서갱유 사건을 진심으로 이해할 수 있게 된다. '그래. 시대를 초월하여 그런 쓰레기들이 존재했던 거야. 이해해. 완전히 이해해. 얼마나 괴상한 책을 읽으며 얼마나 괴상한 사상을 주고받았을까. 책이라면 문제집만 빼고 다 필요없어. 다 불태워버려야 해. 그러고 보니 문자시대가 끝나고 영상시대가 찾아왔다니 얼마나 다행인가. 가만있어도 그런 쓰레기들은 아무 힘도 없이 죽어버릴 테니 다행이다."
p271
요즈음 우리 주위에서 볼 수 있는 문학가들의 소설 문법구조와는 판이하게 다른(인터넷 소설과도 매우 흡사한) 이 소설은 우리들의 일상적인 대화체가 그대로 묘사 되어있다는 것이 참 흥미로웠다.
"미나 술 먹이지마."
"내 가먹 고 싶어서먹 는 거야내 가."
미나의 혀는 마비된 채 늘어진다. 정우가 비닐봉지 안을 들여다본다.
p.37
"뭐 해?"
"담배 내놔 담배."
"여깄는데." 김별이 가방을 가리킨다.
"아 씨." 수정이 담배를 꺼내 불을 붙인다. "짜증나."
"왜?"
"몰라. 그래서 더 짜증나."
"인생이 원래 그런 거야."
"내 인생은 안 그래."
p.99
미나와 민호가 서로를 쳐다본다.
"뭐야 저거." 미나가 말한다. 그리고 바닥에 흥건한 우유를 본다. "씨발년 지금 이거 뿌려놓고 도망친 거야?"
"야 쫓아가봐." "아 왜?"
"그냥 저렇게 가게 놔둘 거야?"
"아 그게 뭐 어때서."
"그러지 말고 좀 쫓아가봐. 쟤 좀 이상해."
"아 뭐가 이상해. 쟤 원래 저래. 원래 조온나 이상해. 아 나 그리고 다 젖었어. 엉덩이가 척척해서 못나가!"
p.172
다른 소설에서는 비교적 얌전한(?) 말투가 씌어졌다면, 이 소설에서는 우리들의 대화가 여과없이 드러났다는게 참 흥미로웠고 그리고 결말에 이르기까지 참 많은 문제를 고민한다는것 또한 흥미로웠다.
인간은 과연 감정 없이 살아갈 수 있을까. 자신의 더럽혀진 우상을 자신 손으로 스스로 파괴함으로써 우리가 취할 수 있는 이익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슬픔이란 무엇이고, 그리고 우리들의 관점으로 보는, 우리의 관점에서 벗어난 것들은 과연 무엇이 되는 것일까.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해준 책이었다.
**덧붙여서
책을 빨리 읽는 나 였지만, 새로운 형식의 소설이기에 그런지 웬지 이 책은 읽는 속도가 더뎠다.
내가 박완서의 "그 남자네 집"을 읽어본 것은 올해 초 일 것이다. 조선일보에서 받은 10권의 책, 그리고 그 책 속에 포함된 박완서의 단편소설집 "친절한 복희씨". 이 친절한 복희씨 안에 그 남자네 집 단편이 실려 있었고, 가슴 풋풋한 첫 사랑이야기가 아름답게 그려져 있기에 재미나게 읽었다.
그러면서 부대 휴게실의 책장을 뒤적이다보니 그 남자네 집이 꽂혀 있었다. 이상하다. 그 남자네 집은 단편이 아니었던가? 이건 그 남자네 집 이란 제목을 달고 있는 단편 소설집인가? 이상하다? 장편소설이라고 적혀있는데. 그리고 이 책을 읽기 시작했다.
이하는 스포일러 영역입니다.
박완서의 그 남자네 집은 단편 소설과 장편 소설 두 종류가 있다.
박완서 본인이 단편을 쓰면서 이 단편을 장편으로 쓰면 무슨 느낌일까 싶어서 필 받아서 쓴 것이 그 남자네 집 장편이니, 사실 그 남자네 집의 단편은 장편의 부모라 불러도 될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까지 읽어보면 알겠지만, 그 남자네 집의 단편은 장편의 도입부밖에 되지 않는다. 슬픈, 슬프지만 현실적인 소설인 셈이다.
소설은 화자(건이고모)가 집들이를 가면서부터 시작된다. 그리고 찾게 된 자신의 옛집터. 어렵사리 찾은 그 집터에서 화자는 과거의 첫사랑을 떠올리게 된다. 먼 친척의 그 남자에게서 시작된 금지된 사랑. 6. 25전쟁이 끝난 직후이기에 나라는 날로 어려웠고, 상이군인의 신분을 갖고 있는 그 남자는 실로 화자의 애인이나 다름없었다.
"그가 멋있어 보일수록 나도 예뻐지고 싶었다. 나는 내 몸에 물이 오르는 걸 느꼈다. 그는 나를 구슬같다고 했다. 애인한테보다는 막내 여동생한테나 어울릴 찬사였다. 성에 차지 않았지만 나도 곧 그 말을 좋아하게 되었다. 구슬 같은 눈동자, 구슬 같은 눈물, 구슬 같은 이슬, 구슬 같은 물결‥‥‥ 어디다 그걸 붙여도 그 말은 빛났다."
-P. 38
하지만 현실은 냉정하기에 그 남자와 이별은 어쩔 수 없었다. 그러면서 은행원의 신분을 갖고 있는 한 남성과 결혼을 하게 된다. 은행원의 신분은 전쟁 직후에는 엄청난 수준의 신분이었으니 부자가 될 것이라는 희망을 갖고 시댁에 들어가지만, 실상은 시궁창. 시어머니 밑으로부터 많은 것을 깨닫게 된다.
"나는 재강 냄새 나는 술도가 집에서 막걸리를 받아오면서 마치 무당집 아랫것이 된 듯한 모멸감을 느꼈다. 이건 도대체 뭐란 말인가. 나는 마침내 시집살이의 밑바닥에 도달한 것 같은 내 꼴을 참담하게 회의했다."
-P. 135
"나는 내 생전에 도저히 끝날 것 같지 않은 시집의 식도락에 절망감을 느꼈다. 먹는 것 외의 딴생각을 하고 살 순 없는 것일까. -중략- 식구들의 식도락을 위해 동대문시장을 누빌 때는 부잣집으로 시집왔다는 환상이라도 즐길 수 있었지만 구멍가게의 외상장부는 그 환상의 허방이었다. 그 허방이야말로 엄연한 현실이라는 걸 깨달았을 때는 이미 새색시가 아니었다."
-P. 137
장을 보러 가면서 부잣집 새색시처럼 꽃단장을 했던 화자는 매달 말이 되자 콩나물과 두부로 반찬을 때워야 하기 일쑤였고 이런 문제로 골치를 썩히기 싫었던 화자는 급기야 남편에게 고민을 터놓기 시작한다. 그러자 은행원인 남편은 주급을 주기로 약속을 하고 화자는 주급생활에 익숙해지게 된다.
"그달부터 나는 주급쟁이가 됐다. 남편의 판단은 옳았다. 일주일 단위로 쪼개서 받으니까 다시 하루하루 쪼개서 쓰는 일이 한결 수월해졌다. 거의 외상장부를 안 긋게 되고 동대문시장에서 물건값을 깎을 줄도 알게 되었다."
-P. 141
하지만 문제는 이것만이 아니었다. 고달픈 시집살이의 끝은 고집스런 식도락도 아니오, 그렇다고 돈 문제도 아니었다. 시어머니의 고상한 취미, 집안에 대소사를 기릴 때 박수무당에게만 묻는다거나 남편은 월급의 10분이나 되는 액수를 시어머니에게 용돈으로, 그것도 은행에서 막 찍어낸 듯 한 돈으로만 준다거나.(심지어 먹거리를 살 돈조차 없는데도 불구하고!) 결혼 전에는 몰랐던 이 집안의 단점이 보이기 시작한 것이었다.
그러나 이런 것은 그저 참고 지나갈 수 있었다. 가장 큰 문제는, 바로 그 남자를 다시 만나게 된 것이다.
"나는 시어머니가 다락같이 높여 놓은 아들의 입맛에 아부하기 위해 솜씨를 있는 대로 부린 송이산적의 맛보다 그 남자하고 같이 시장바닥 진창에 쭈그리고 앉아 사먹는 돼지껍데기에 더 깊은 맛을 느꼈고, -중략- 우리는 시간이 없는 것이지 돈이 없는 게 아니었다."
-P.185
자신은 결혼한 몸이 아니었는가. 결혼한 몸으로 다른남자를 만난다는 것은 바로 바람피는 것이었는데. 화자는 자신을 정당화하며 그 남자를 만날 뿐이었다. 흡사 우리가 말하는, "자기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이란 사고방식을 저지르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 사고방식의 절정을 치닫게 되는 사건이 있었으니, 바로 그 남자가 먼 선산으로 외박하러 가자고 꼬드기는 것에서 시작되는 것이다. 하지만 약속장소에서 기다리는 화자를, 그 남자는 무참히 바람맞혀 버렸고, 그렇게 화자는 집으로 되돌아오고 만다.
집에 돌아오자 화자를 맞는 것은 심한 독감이었고 화자는 자신이 한 일에 대한 업보라고 생각할 뿐이었다. 그리고 다시 시댁을 위해 봉사를 하였다. 그러나 친정에 돌아가자 들려오는 청천벽력같은 소리, 그 남자가 눈이 멀었댄다. 화자는 미친듯이 그 남자가 실려간 병원을 찾았을 뿐이다.
점차 그 남자를 향한 발걸음은 사그라지고, 새로운 일이 생겨났다. 그것은 이웃집 춘희가 미군부대의 양키와 몸을 섞으면서 임신을 하였고, 그 아이를 칼로 긁어내는 일이었다.. 이런 일이 있은 후 춘희는 점점 몸을 더럽혀만 갔고 화자의 인생에 새로운 전환기를 맞게 된다. 드디어 자식이 생기게 된 것이다. 4남매를 낳고 기르는 동안 그놈의 박수무당이 화자에게 많은 스트레스를 주었지만, 그래도 화자는 잘 견뎌냈다. 하지만 점차 자신이 싫어하던 친정어머니의 본성이 자신에게서 보여지는 것이었다. 집 늘리는 재미로 살았고 가족이 살아온 집을 밥벌이로 사용하던 어머니의 본성이, 다른 사람에게서는 당당한 모습을, 거짓된 당당한 모습만 보여야 하는 어머니의 본성이 보여지는 것이었다.
"친정집이 잘되는 걸 샘내 보긴 처음이었다. 내 집에도 변화가 필요한 시기가 됐다는 걸 절감했다. 내 주변만 조금씩 잘살게 되는 게 아니라 온 국민의 생활 정도가 날로 향상되고 있었다. 셋방이나 전세방으로 시작한 친구들이 신흥 주택가에 새로 장만한, 타일이 번질번질한 소위 양옥집이라는 데 가보면 방들이 어찌나 널찍널찍한지 우리집은 그야말로 코딱지만 했다. 고래등 같은 기와집이 코딱지만 해지는 동안 우리는 도대체 뭘 했나. 상대적인 빈곤감이 이렇게 고약한 것인 줄은 미처 몰랐다. 나는 매일같이 바가지를 박박 긁었다."
-P. 254
자신을 괴롭혀오고 스트레스를 줬던 박수무당이 드디어 자신에게 도움을 주었다. 바로 이사를 가라는 점괘를 시어머니께 내려준 것이다. 이렇게 그 대 가족(시어머니, 화자, 화자의 남편, 아들 넷 총 7식구)은 사대문 밖의 넓은 집(130명 정도가 한꺼번에 잠을 잘 수 있을 정도로 넓은)으로 이사가게 되었다.
그러면서 친정집도 이사를 하게 된다. 화자는 친정집에 들러 자신의 짐을 챙기는 도중 친정어머니로부터 뜻밖의 소식을 전해듣게 된다. 그 남자가 화자가 결혼을 한 후에도 몇번이고 찾아왔다는 것이다. 화자는 그 말을 듣고 용기를 내서 그 남자를 만나기로 결심을 한다.
"그러나 나는 그 남자에게 전화를 걸고야 말았다. 그리고 언제 헐릴지 모를 친정집을 약속장소로 정했다. 내가 먼저 가서 기다렸다. 그 남자가 정각에 나타났다. 엄마한테 들은 대로였다. 하나도 안 변했다. 조금도 늙지 않았다. 청계천변을 같이 헤메던 시절보다도 더 전, 전쟁 중 폐허의 서울에서 만난 상이군인 시절의 아름답고 우수 어린 청년의 모습 그대로, 앞이 안 보인다는 걸 전혀 눈치 챌 수 없도록 뚜벅뚜벅 늠름하게 걸어 들어왔다."
-P. 285
"그리고 이 집이 헐리게 되어 섭섭하고 슬프다고 말했다. 왜? 저 포탄 자국 때문에. 그 남자하고 이 집을 처음 보러왔을 때도 그는 기둥에 생생하게 입을 벌리고 있는 포탄 자국에 먼저 주목하고 마음아파했었다. -중략- 그러나 기둥에 포탄자국은 없었다. 이사온 지 몇 년 있다 한 차례 집을 고치고 칠할 때, 그 흉터를 메우고 나무 색깔로 칠해서 감쪽같았다. -중략- 나는 그가 있지도 않은 포탄 자국을 바라본 것처럼 지금은 있지도 않은 구슬 같은 처녀를 바라보고 있다는 걸 알아차렸다. 이 자라지 않는 남자를 어찌할 것인가."
-P .286
"보이는 사람과 마찬가지로 행동하기 위해 그가 기울였을 노력을 생각하니까 화가 부글부글 치밀었다. -중략- 현실을 볼 수 없게 되었다고 해서 현실을 인정 안하고 살 수는 없지 않은가. 어떻게 야단을 쳐야 이 새끼가 정신이 날까. -중략- 실은 그보다 훨씬 더 상스럽게 입에서 나오는 대로 야단야단 치다가 하던 깐은 있어서 설교도 잊지 않았다. 헬런 켈러가 있다는 게 나에게도 구원이 되었다. -중략- 그 남자는 시력을 잃고 나는 귀여움을 잃었다. 나의 첫사랑은 이렇게 작살이 났다."
-P. 288
세월은 흐르고 흘러 화자의 어머닛대가 세월을 이기지 못하고 눈을 감게 된다. 친하게 지내던, 이사가기 전 옆집에 살던 춘희의 어머니가 죽었고, 그 사이 미국으로 이민을 갔던 춘희를 만나게 되었다. 닳고 닳은 여자가 된 춘희. 그리고 신문에서 만나게 된 그 남자의 부음. 갑작스런 부음이었다. 문상은 가지 않았고, 그 남자가 죽기 전에 만난 것을 문상으로 대신하게 된다. 그 남자의 어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그 남자의 어머니의 문상을 가며 만난 것으로 말이다.
"우리 엄마 돌아가실 때도 내 헌 빤스 입고 돌아가셨다우. 내 내복 찌들어서 버리면 멀쩡한 거 왜버리냐고 주워다가 껴둔다고 와이프가 구시렁거리는 소리 들었어도 그 정돈 줄은 몰랐어. -중략- 그 남자가 말끝을 흐렸다. 울고 있었다. 점점 더 심하게 흐느끼면서 볼을 타고 눈물이 줄줄 흘러내렸다. 나도 애 끓는 마음을 참을 수 없어 그 남자를 안았다. 그 남자도 무너지듯이 안겨왔다. 우리의 포옹은 내가 꿈꾸던 포옹하고도 욕망하던 포옹하고도 달랐다. 우리의 포옹은 물처럼 담담하고 완벽했다. 우리의 결별은 그것으로 족했다."
-P. 310
이렇게 이 소설은 끝이 난다. 인용구를 엄청나게 넣다보니(보다 생생하게 쓰려고 욕심부리다보니) 이렇게 글이 길어져버렸다. 이거 문제 있는데. 아무튼 이렇게 이 소설은 끝이 난다. 친절한 복희씨를 읽을 때에도 느꼈던 점인데, 박완서의 소설은 은근한 유머감도 있으면서 매우 현실적이라는 것이다. 인용구에서 느낄 수 있을런지 모르지만 박완서의 소설중에는 본문의 내용 속에 대사가 섞여있기도 한다.
누구나 첫사랑에 대한 추억을 갖고 있을 것이다. 나만해도 그렇다. 그리고 누군가는 날 첫사랑의 대상으로 삼았겠지. 이 글을 읽는 그대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첫사랑은 흔히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말한다. 이 소설의 주인공도 마찬가지로 이루어지지 않았고, 슬프게 헤어질 뿐이었다.
피천득의 인연이란 글을 읽으면 이런 구절이 나온다. "나와 그 소녀는 세 번을 만났다. 하지만 세번째는 아니 만났어야 할 만남이다." 첫사랑은 단지 가슴 속에 깊이 묻어놓았을 때가 아름다운 법이다. 욕심을 내서 만나게 되면 소중한 것을 잃게 된다.
PC통신에 글을 올리면서 시작된 퇴마록. 그리고 이어진 왜란종결자, 파이로 매니악. 치우천왕기...
이우혁은 이영도(드래곤 라자)와 전동조(묵향)와 함께 국내 판타지 시장의 주름을 잡고 있는 인기 작가이다.
이우혁의 특징으로는 엄청난 자료 수집 능력을 손꼽을 수 있는데, 이는 그의 소설을 보면 자세히 알 수 있다. 전 세계에 존재하는 수많은 심령현상들(퇴마록)과 자신의 전공을 한껏 살린, 사실 섬뜩하기 그지 없는 사제 폭발물을 이용한 살인(파이로 매니악), 그리고 인간 이순신을 재해석하고 그 때 당시의 거북선을 나름대로 재조명하기도 하며(왜란종결자) 우리의 자랑스러운 고대의 영웅 이야기를 담은 치우천왕기까지.
이 소설들을 보면 단지 이우혁은 대단하다는 소리밖에 나오지 않는다.
"치우"라는 말은 우리는 어디에선가 적어도 한 번 쯤은 보았거나 들어보았을 것이다.
2002년의 월드컵때 우리는 귀신 형상을 한 붉은 악마의 모습이 담긴 수건이며 깃발을 나부끼며 우리의 축구 선수를 열광적으로 응원하기도 했고 좀 더 나아가서는 한옥의 처마 끝에서도 귀신 모습의 기와 막새(처마 끝을 잇는 수키와)를 보기도 했을 것이다. 이것이 바로, 치우의 모습이다.
치우천왕기는 단군 고조선 시대, 즉 신석기 시대의 말기이며 또한 청동기 시대가 막 시작된 시점에서 이 이야기는 시작된다. 대략 5천년 전의 이야기인 셈이다.
그렇다고 해서 모든 등장인물이 머리가 부스스하고 옷이라고는 가죽쪼가리로 사타구니만 가렸으며 돌멩이로 사슴이나 쳐 죽이는 시대의 이야기는 절대로 아니다. 이 이야기는 소설이고, 소설이란 어디까지나 허구의 이야기이므로 이 소설이 역사의 모든 사실이라고 생각해서도 안되며 말도 안된다고 트집을 잡아서도 안되는 것이다.
이하는 스포일러 영역
소설의 주인공은 희네(치우천)와 나래(치우비)의 이야기로 시작된다.
닮지 않은 쌍둥이로 태어난 이 둘은 참으로 매력적인 인물이다. 형인 희네는 수려한 외모에 투명한 피부, 낭랑한 목소리, 현명한 머리, 훤칠한 키 등, 말 그대로 꽃미남인 셈이다. 그러나 치명적인 단점이 있으니, 어려서부터 앓고 있는 병으로 인하여 몸이 매우 약한. 그런 인물임과 동시에 동생인 나래 역시 같은 피를 물려받은지라 외모에도 전혀 굴하지 않는다. 그러나 어려서부터 힘을 타고난데다가 "아홉구비"라는 약초의 힘으로 그 힘을 증폭하였으니 천하제일의 장사임에 틀림 없다.
희네와 나래가 성인이 될 무렵, 태산에서는 태산회의가 열리게 되었고 드넓은 땅 위의 수많은 부족들은 이 태산회의에 참석하게 된다. 희네와 나래가 속한 부족인 "주신"으로부터 그 주신과 숙적인 지나족, 말걀족, 몽골족 등 밑도 끝도 없이 많은 부족들이 모이게 된다. 그러면서 이들은 우연한 기회에 태산회의에 참석을 하게 되고 그 태산회의에서 자신들의 뜻에 맞는 다른 부족의 동지들을 찾게 된다. 자신들의 뜻이란, 이미 썩어빠진 "주신"제국을 아예 새로이 갈아 엎어버리려는 뜻이다. 그러나 그런 동지들을 찾음과 동시에 불행이 떨어졌으니, 사막의 한가운데에 그 주인공이 버려지게 된다.
사막의 한가운데에 버려지기 직전에, 한웅으로부터 새 이름을 하사받으니, 희네는 치우천으로, 나래는 치우비란 이름을 갖게 된다. 죽음의 사막에서 동료들의 도움으로 빠져나오고 치우천은 새로운 부족을 세우게 된다.(세우는 도중에도 엄청나게 많은 동료들을 얻게 된다.) 주신을 제외한 다른 부족은 돌을 갈아 만든 신석기를 사용하는데 반해 주신족은 청동으로 만든 무기를 사용한다. 이런 청동 무기를 치우천은 대량으로 구하여 자신의 새로운 부족원들에게 나눠주니, 많은 이들이 치우천의 부족을 "작은 주신"으로 칭하게 된다.
이윽고 뜻이 되었다고 생각을 한 치우천은 자신의 부족원을 이끌고 주신으로 돌아간다. 이 과정에서 주신과 작은 주신간의 엄청난 혈전이 있었지만, 그리고 곳곳에서 새어나가는 치우천의 엄청난 작전으로 작은 주신의 치우천은 진퇴양난의 길에 가로설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오래전부터 자신을 도와준 "맥달"의 도움으로 그 혈전에서 승리를 거두게 되었고, 치우천은 주신의 새로운 신흥 귀족으로 올라설 수 있게 된다.
이무렵 치우천은 작은 주신에 속한 모든 식구들을 주신에 모두 불러들이는데, 여기엔 자신과 함께 사막을 건넜던 소녀(素女)도 속해있으며, 이 소녀와는 작은 주신을 세울적에 결혼을 한 사이었다. 그러나 여자의 질투심이란 한도 끝도 없는지라 치우천과 맥달의 사이를 의심한 소녀는 치우천을 무참히 내버리고 유유히 사라진다.
사라진 소녀는 치우천에게 엄청난 선물을 안겨주니, 이것은 바로 주신 내의 가장 큰 권력을 행사하고 있는 자신의 외할아버지인 고시율률의 목. 그리고 주신은 엄청난 충격의 도가니로 빠져들게 된다. 그리고 치우천은 행방불명이 된다.
등장인물도, 이야기의 배경도. 그리고 치우천의 전술도 모두 스케일이 전혀 다르다. 뒤통수를 때리는 반전이 매 장을 넘나든다. 그리고 흥미로운 옛 인물들의 이야기들. 방중술을 쓴 소녀가 등장을 하는가 하면 징기스칸의 먼 선조뻘인 보돈챠르와 우리 한국의 귀신들을 총칭하는 이매망량(魑魅魍魎)의 원 뜻인 리미, 삼국지에도 등장한 축융부인의 선조뻘인 축융. 그리고 우리 한국에서 쓰이는 4방위신. 백호, 청룡, 주작, 현무의 원 뜻, 번개범, ???(아직 소설내에 등장하지 않았다.), 붕, 첸누 등 이들을 알아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그리고 이우혁의 소설 특성상, 그리고 이 소설의 특성상 대규모 전투 장면들의 묘사가 매우 뛰어나며 각 부족의 특성들 또한 뛰어나기에 그들 부족원들의 행동들을 지켜보는 재미로도 쏠쏠하다.
현재 9권에서 나오지 않은 지 3년이 되어가지만. 곧 10권과 11권이 동시 출간됨과 동시에 마지막편이 될 것이라 하니, 조금만 더 참으면 귀한 소설의 끝을 볼 수 있을 것이다.
누가 그랬던가, 이우혁의 소설을 읽는 것은 인내심의 한계를 시험하는 것이라고 한 것을.
물론 이 글에서는 적지 않았지만, 내가 쓴 저 글은 단순한 줄거리에 불과하다는 것. 그러나 책을 읽으면 감동은 두배로 된다는 것. 이 점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이 책을 읽음으로 난 책을 천천히 읽어야 한다는 진리를 배우게 되었다. 연재 소설은 보석과도 같은 것이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베르나르 베르베르라는 이름을 들어보았을 것이다. 대단한 상상력을 글로 써내는 재주와 독특한 세계관으로 이루어진 그의 전작들, 개미와 타나토노트, 뇌 등등의 작품들.
이전 개미의 리뷰를 쓰면서 결말이 너무 안드로메타 틱하게 빠져 버린 것에 대해서 매우 아쉬웠다고 쓴 적이 있었다. 그리고 아직 리뷰를 쓰진 않았지만, 뇌 마찬가지였고. 과연 이번작품 파피용은 어떠할까.
우리는 한 번이라도 이런 생각을 해 보았을 것이다. 종말이란 세상은 어떤놈의 세상이고 어떻게 오는 것이며 언제 오는 것인지. 그 종말이라는 세상은 신이라는 작자가 떨구는 감자같은 운석덩이에 붙어 오는 것인지, 아니면 서로 흥분이 되어 싸우다가 스스로 자멸하게 되는 것인지. 오징어같이 생긴 외계인이 지구로 흘러들어와 레이저빔으로 우릴 다 녹여버리는 것인지.
이런 생각을 하고 나서는 종말이 오면 다 죽는가, 생각할 수 밖에 없다. 난 살고 싶은데. 그런데 나만 살아서 무엇을 하나. 다른 사람과 같이 살고 싶다. 아니 사람하고만 살면 안된다. 거대한 지구위에 덩그러니 놓여 있는 사람 하나가 무슨소용이 있을까. 동물도, 식물도 같이 살아야 한다.
하나님이 노아에게 이르시되 모든 혈육 있는 자의 강포가 땅에 가득하므로 그 끝날이 내 앞에 이르렀으니 내가 그들을 땅과 함께 멸하리라. (창세기 6:13)
만약 우리에게 종말이 오게 된다면, 우리도 방주를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 그런데 종말이란 것이 꼭 홍수로만 일어나는 것이 아닐수도 있다. 기후 변화와 인적 재해, 우주 재해로도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기껏 방주를 만들었는데 운석이 떨어지게 되면. 이거야 말로 말짱 도루묵이 될 것이다.
스타크래프트라는 게임과 헤일로, 그리고 다른 여러 게임들. 이 게임들 뿐만이 아니라 오래전에 있었던 많은 세계 역사들. 이 게임들과 역사들의 공통점으로는 한 가지가 있을 것이다. 자신들의 본거지를 넓히기 위해 다른 행성/나라로 진출하였다는 것.
우리에게 종말이 오게 된다면, 우리는 그 종말을 피해 다른 행성으로 도망을 가면 될 것이다. 그런데 그러기 위해서라면 엄청난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스타크래프트나 헤일로에서는 시대적 배경이 2500여년 정도가 된다. 그러니까 당연하게도 광전자 엔진이나 워프 기술들이 발전해 있겠지만. 아직 우리들 기술로는 그것이 부족하다. 그럼 그 시간동안 사람들이 죽으면 어떻게 할까?
답은 간단하다. 많이 태워서 죽어도 죽어도 보충이 되도록 만들면 된다. 그러니까, 우주선을 엄청나게 크게 만들면 된다.
그리고 동식물들은, 인공수정을 하면 되니 정자와 난자들을 냉동보관 하면 될 것이다.
내가 인 맺은 자의 수를 들으니 이스라엘 자손은 각 지파 중에서 인 맞은 자들이 14만 4천이니
(요한게시록 7:4)
우리가 지구를 탈출하게 되면 그 길고 긴 시간동안 무엇을 해야 할까. 1천년이라는 세월을 우주선 안에서 보내야 할 것이다. 사실 인간 수명이 80년이라고 가정하게 되면 우리의 손자의 손자의 손자의 손자도 우주선 안에서 보내겠지만.
일단 지구를 탈출하게 된 이유는 지구가 멸망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었다. 그 불안감은 지금 곳곳에도 발견이 된다. 각지에서 벌어지는 테러들과 북한의 대남 도발, 계속 만들어지는 핵무기. 온실가스 배출로 인한 기상 이변, 점점 더 잔인해지는 살인들. 그리고 눈 뜨고 도저히 못 봐줄 여러 사건들.... 신이란 작자가 떨구는 돌멩이보다도, 꼴뚜기 같이 생긴 외게인들이 쏘아대는 레이저 빔 보다도 저것이 더 무서웠던 것이다.
그러니까 우리들은 저런 결과를 되풀이 하면 안 될 것이다.
14만 4천명의 수가 우주선에 타게 되고 그것이 날아간다면 많은 일이 있을 것이다. 조선 왕조가 500년이었다. 그 조선 왕조 500년에도 많은 일이 있었는데, 우주선 1000년에는 무슨 일이 없을까. 없게 하기 위해서는 그 불씨조차 주어서는 안된다. 폭력의 씨앗을 주면 안 될 것이다.
하지만 아쉽게도 사람은 어딘가에 소속되기를 원하는 존재이다. 그리고 우두머리가 존재해주길 바라는 존재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우두머리가 존재하면 그 존재를 욕하지만 그 단체는 결집력이 대단해진다. 그러나 그 우두머리가 없는 공동체라면 결집력이 상당히 미약해지게 된다...
이 1천년동안 인간은 많은 진화를 할 지도 모른다. 그러나 고작 1년동안 무슨 진화를 할까 싶기도 하다. 과학의 궁극적 진화는 자연이라는 결론처럼, 1천년에 따른 우주선 안의 최종적 모습은 정글과도 같은 모습이 되지 않을까. 그리고 그 정글에 사는 우리의 후손의 후손의 후손의 후손님들은 아마 원시인과도 흡사한 모습이 되지 않을까.
그리고 이 때 즈음이 되면 아마 우리가 원하던 행성에 도착했을 것이다.
주 하나님이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그의 코에 생명의 기운을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명체가 되었다. (창세기 2장 7절)
주 하나님이 남자에게서 뽑아 낸 갈빗대로 여자를 만드시고, 여자를 남자에게로 데리고 오셨다. 그 때에 그 남자가 말하였다. "이제야 나타났구나 이 사람! 뼈도 나의 뼈, 살도 나의 살, 남자에게서 나왔으니 여자라고 부를 것이다." 그러므로 남자는 아버지와 어머니를 떠나, 아내와 결합하여 한 몸을 이루는 것이다. 남자와 그 아내가 둘 다 벌거벗고 있었으나, 부끄러워 하지 않았다. (창세기 2장 22~25절)
과연 우리의 후손들은 우리가 원하던 행성에 도착을 잘 하였을까? 혹시 남자 하나만 살아나거나, 여자 하나만 살아남지는 않았을까. 아니면 도중에 모두 죽지는 않았을까? 많은 사람들이 도착 했을까? 이렇다면 다행이지만.
베르나르의 이야기는 의문에 의문을 던지며 책의 말미에 마침표를 찍는다. 잠시도 손에서 뗄 수 없는 묘한 중독감을 맛보게 해 주는 책, 파피용.
이 결과를 직접 확인하시라.
참고로 개미나 뇌와 달리 4차원으로 결말이 빠지는 구조가 아니기에 난 파피용을 매우 재밌고 즐겁게 읽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