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의 시옷도 몰랐을 때. 그저 찍는게 전부였던 그 시절. 자동 필름 카메라부터 시작하여 토이 카메라, 그리고 똑딱이를 거쳐 미러리스, DSLR 까지. 수많은 카메라를 거쳐갔고 수많은 사진들을 찍어왔다.
초등학교를 다녔을 적에, 소풍을 간다치면 대부분 카메라를 하나씩 들고오곤 했다. 일회용 카메라라던가 혹은 장롱 한구석에 놓여있을법한 자동 카메라같은것들 말이다. 어른들 말로는 "있는집 자식"은 수동 카메라가 있었다고는 하는데, 우리집은 "애석하게도" 수동카메라가 있지는 않았다. 간혹, 카메라를 고장내기도 했었고 사진을 다 찍기도 전에 필름 커버를 열어버리는 불상사도 존재했으며, 일회용 카메라를 어떻게 해서든지 다시 써보겠다고 뜯어본 걸 생각하면 어쩌면 흔히 보이는 "남자란 모름지기 눌렀을 때 반응하는 것에 열광한다" 는 말이 진리일지도 몰랐다.
어렸을 적에는 왜 사진에 끌렸는지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아직도 기억나는 몇가지는, MP3로 유명한 아이리버에서 사진기능을 탑재한 신제품 MP3를 출시했을 때,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사고싶어했다. 결론적으로 내 손에 들어오는 일은 없었지만, 왜 갖고싶었는지는 아직도 알 수가 없다.
고등학교 재학생 시절이었던 2005년. 지금은 그저 비웃을법한 133만 화소의 토이 디지털 카메라를 한두개정도 샀었다. 메이커 불명에 생전 처음보는 CF(Compact Flash) 타입의 메모리, 고등학생 신분에는 나름 고가였던 약 8만원. 옥션 경매에서 구매하면 정가보다 싸게 살 수 있다는 생각에 무턱대고 입찰하기를 수십번. 그렇게 구매한 LCD도 존재하지 않는 토이 디지털 카메라. 사진이 어떻게 찍히는지도 모르거니와, 각종 노출수치(있다고 해도 그 때 당시에는 관심 없었겠지만) 또한 조절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저 말 그대로 사진만 찍히는 카메라였다. 몇 번 들고다니면서 사진을 찍곤 했지만 이내 시들해졌다. 그리고 그보다도 더 편하게 사진을 찍을 수 있는 수단이 존재했다. 바로 폰카였다.
스마트폰이 존재하기 이전, 2G/3G 폴더폰을 사용하면서 일상생활은 정말이지 눈부시게 달라졌다고 생각된다. MP3를 들고다니지 않아도 휴대폰으로 음악을 들을 수 있었고, 부족한 화소였지만 당시에는 정말 획기적으로 화질이 좋았던 폰카 덕분에 무거운 카메라를 들고다니지 않아도 될 정도였다.
그랬던 내가 사진에 조금씩 흥미를 보인건 똑딱이 디카를 구입하고나서부터였다. 아무리 스마트폰이 좋다고 해도 당시의 폰카 성능은 똑딱이 디카의 성능을 따라잡지는 못한 것도 하나의 이유였으며, 스마트폰으로 풍경을 찍어도 내 마음에 쏙 들지만은 않았던 것이 가장 큰 이유라 생각된다. DSLR 이니 뭐시기니 하는 카메라들은 너무나도 고가인 것도 한몫했다. 그렇게 구입한 것이 니콘 쿨픽스 P300 되시겠다.
니콘 쿨픽스 P300
이 카메라를 구입할 당시에 나름 고민해서 알아본 것으로 기억되는데 일단 풍부한 Manual 모드가 있어야 한다는 것. 그리고 가볍고, 적당한 가격이어야 한다는 점이었다. 그리고, 카메라를 용산에서 구입한다는 것이 얼마나 빡치는 일인지도 알게 해주는 일등공신 되시겠다. 사실 구입 당시에는 이 카메라의 각종 수치들이 무엇을 말하는지 하나도 알지 못했고 이 글을 쓰는 시점에서야 이 카메라가 당시엔 쩔었던 놈이구나 라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약 6년만에 다시 살려냈다.
장인은 연장탓을 하지 않는 법. 이 말과 같이 난 이 카메라로 쩔어주는 사진을 찍을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렇게 찍어댄 수백여장의 사진이 있었고 나름의 연구도 했으나 글쎄. 난 이 카메라로부터 배운 건 크게 없었다. 30여만원의 돈낭비를 한 셈이었다.
그렇게 사진이 기억속에서 잊혀지나 싶었으나 어느날 문득 떠오르는거다. 고양이를 입양하고나서 카메라를 다시 알아보기 시작했다. 2012년 무렵. 울 고양이 사진을 많이 찍어서 보관해야지. 이 생각 하나로 카메라를 알아보기 시작했다. 동생에게는 당시에 캐논 550D를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DSLR은 무거웠고 차선책으로 미러리스 카메라를 고려했다. 당시에는 삼성 미러리스 카메라가 미러리스 시장을 평정하다시피 존재했다. 자세히는 기억나지 않지만, 렌즈 품질이 그렇게나 끝내줬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격이 착하다는 이유에서였다. 거기에 AS 또한 삼성이니 믿을만하다 싶었다. 그렇게 인생 첫 할부를 삼성 미러리스 NX210으로 시작했다.
삼성 미러리스 NX210 , 마운트된 렌즈는 18-55mm 표준줌렌즈.
이 카메라로는 많은 것을 배우게 되었다. 렌즈 마운트라거나 노출의 3요소인 ISO, 조리개, 셔터스피드 까지. 이 카메라를 사면서 같이 받은 사진 가이드가 나에겐 가장 큰 도움이 되었다. 토탈 5만여장의 사진을 찍은 이 카메라로는 일본여행이나 부산여행, 고향집, 고양이, 불꽃놀이 등을 찍고는 했다. 지금까지 찍은 사진들은 풍경이었고, 역시 이 카메라로도 풍경 위주로 사진을 찍곤 했다. 때로는 카메라를 하나 들고 보라매공원을 다녀가기도, 때로는 발길 닿는 서울시내의 어딘가 골목을 누비기도 했다. 일단 찍고보자는 심정에서 찍었다.
아웃포커싱이라거나 혹은 수동초점이라거나. DSLR을 써보지는 않았지만 가장 DSLR에 근접하기도 한 이 카메라는 그렇게 내 손에서 풍경만 찍히다가 끝나버리고 말았다.
0. 겨울왕국 열기(Frozen Fever) 라는 한글명이 더이상 완벽할 수 없음 1. 사실 이번 디즈니 실사영화(신데렐라)는 기대이하 2. 요사이 디즈니 실사영화 트렌드에 비하면 영.. 3. 동화 그대로. 볼 영상은 밤 12시 미라클 타-임 직전까지. 4. 말레피센트와 같은 반전은 전혀없고 5. 헬레나 본 햄 카터가 유일하게 재밌었고 5-1. 물론 겨울왕국 열기 제외 6. 좀 아쉽다고 말하길 한시간 반이나 되었으니 7. 내 점수는 겨울왕국 열기 포함 표값+음료값 8. 겨울왕국 열기 제외 = 표값 - 음료값
0. 애도 폴 워커 1. 사실 분노의 질주 - 도쿄드리프트부터 역주행했지만 2. 그동안의 모든 떡밥이 이리 풀린게 참 다행이다 싶다. 3. 여전히 달리고 터지고 부수고는 당연했지만 4. 시리즈를 모른다면 그저 예고편이 전부인 영화. 5. 역시 디젤성님....♥ 6. 마초를, 마초의, 마초만을 위한 영화. 마초향 첨가 100퍼
0. 1주일전에 봄 1. 재밌다는 말만 들었지 어떤지는 몰랐는데 2. 이건 상상 그 이상 말 그대로 미친영화 3. 색감도 참 예술로 잘 뽑아냈고 4. 각종 미친(?) 차들이 잔뜩나와서 더 미친 영화 5. 스토리가 큰 역할을 하는 영화는 아닌거같고 그래서 스토리 없다고 까긴 하는데 5-1. 그렇다고 이 혼돈과 도가니의 카오스틱한 미친영화가 단순히 미쳐서 재밌는건 아니고 6. 오히려 B급 영화를 대놓고 표방하기에 B급스러움을 가득히 즐길 영화라고 생각됨 7. 상영관 내려가기 직전에 봐서 참 다행이자 슬픈데 8. 기회가 된다면 다시 상영관에서 보고싶은 그런 영화 9. 끝났다고, 이제 더 보여줄 미친짓이 뭐가있나 싶었는데 막판이 대박이더라고.
비디오 게임. 그러니까, 비디오 카세트를 넣고 플레이를 하는 게임이라기보다는 가상환경에서의 게임을 총칭한다. 넓은 범주에서는 PC나 콘솔 게임도 비디오 게임의 일종으로 분류할 수 있다. 비디오 게임을 간략히 정의하는 이유는, 소니의 Play Station2(이하 플스2)가 알고보면 무려 '6세대'의 비디오 게임기였다는 것. 오래전의 닌텐도 패미컴 등이 3세대에 속한다.
소니의 플스2가 말 그대로 대박을 내게 된다. 오죽하면 80년대에는 패미컴이 존재했다면, 2000년대에는 플스2가 존재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 무려 1억 5천만대나 팔렸다고 하니까 어마어마한 판매량이라고 보면 될 듯 하다. 이 즈음에 마이크로 소프트에서 비디오 게임 시장에 출사표를 던지고 XBOX를 출시하였으나, 당연히도 플스2의 판매량을 넘어설 수는 없었다. 단지, XBOX라는 새로운 플랫폼의 출시에 의의를 두면 될 듯.(물론 이로 인하여 헤일로라는 거대 프랜차이즈가 탄생하였다는 건 의외의 사실)
여튼, 휴대용 게임기의 시장은 닌텐도의 NDS가 거의 독점하다시피 한 상황에서 '헤비덕후'를 위한 휴대용 게임기를 만들자는 취지 하에 소니에서 개발되어졌다. 약 1년 9개월 정도의 개발기간을 가지고, 2004년. Play Station Portable(이하 PSP)이라는 이름으로 출시가 되었다. 위에서 이야기했듯, 상대적으로 낮은 스펙을 가지고 있던 NDS에 비해 우월한 스펙을 가지고 있었으며 따라서 화려한 그래픽과 멀티미디어 기기로 사용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였다. 그리고, 당시 고3이었던 나는 이러한 장점을 내세워 EBS 인터넷 강의를 보겠다는 명목 하에 꼬불쳐둔 세뱃돈으로 인강 감상의 대세였던 PMP를 멀리하고 PSP를 사게 된다.
1. 사골무쌍이라 불리던, 진삼국무쌍 (2005년~2006년)
(이미지 설명 : 진 삼국무쌍 패키지 이미지)
플스2의 진삼국무쌍3를 컨버전하여 PSP에 출시가 되었다. 플스2와 같은 콘솔 게임기가 없었던 나에게는 매우 신선한 게임이었고, 게임잡지나 인터넷에서는 진삼국무쌍의 각종 리뷰들과 칭찬들이 그득했기에 구매하였다. 2005년 8월 즈음, 대학교 수시면접을 보러가는 도중에 용산에 들러 해당 타이틀을 구입하고 면접 전날 모텔방에서 혼자 미친듯이 플레이를 했던 게임. 처음에는 참 재미있게 플레이를 하였으나, 단조로운 진행방식과 쉬운 난이도에 금방 흥미를 잃고 말게 된다. 이후에는 이 타이틀을 봉인.
(이미지 설명 : 진삼국무쌍 플레이 화면)
차후에는 진삼국무쌍 5, 6가 차례로 컨버전 되었으나, 동생에게 빌려준 PSP의 분실로 인해 해볼 기회가 없게 된다.
2. 내가 잘 하던 리듬게임, Dj Max Portable (2005년~2008년)
(이미지 설명 : Dj Max Portable 패키지 이미지)
우리나라에서 리듬게임이라는 장르는 나름 오래된 편이다. 오락실의 펌프잇업(Pump It Up!)은 놀랍게도 우리나라 게임(99년 출시)이며, EZ2DJ 또한 우리나라 게임(99년 출시)이다. 물론, 펌프잇업은 코나미의 댄스 댄스 레볼루션(DDR)을 카피해낸 게임이고 EZ2DJ 또한 코나미의 비트매니아를 카피해낸 게임이다. 시간이 흐를 수록 오리지널의 색채를 띄긴 했지만. 시간이 흐르면서PC 리듬게임으로는 오투잼(2002년 출시)을 시작하여 캔뮤직(2003년 출시), DJ Max 온라인(2005년), 오디션(2005년 출시), 알투비트(2005년 출시), EZ2ON(2013년 출시)가 출시되기에 이르른다. 리듬게임을 워낙 좋아해서 거의 모든 게임을 다 해보았다고 해도 무방할 정도.
(이미지 설명 : 오투잼 플레이 화면 ; 아 저 엿같은 캐릭터들;)
오투잼을 약 2003년 부터 즐기기 시작했는데 순전히 '서태지'의 7집 곡들이 공개되었기 때문이다.(난 서태지 빠돌이이다.) 그걸 계기로 리듬게임에 입문을 하게 되고, 의외로 재밌고 스트레스가 해소된다는 점이 마음에 들어 몰두하게 된다. 몇라인 난이도인지도 기억이 나지 않는 오래된 게임. 이후에 Dj Max 온라인 시리즈를 하면서 오투잼은 그냥 묻히고 말았다. 사실 인터페이스가 워낙 촌티나기도 하고.
(이미지 설명 : Dj Max 온라인, 대전모드)
Dj Max 온라인은 2005년에 플레이 하기 시작했다. Dj Max 시리즈는 EZ2DJ의 개발진들이 EZ2DJ 온라인화를 꾀하며 만든 새로운 게임이라고 간단요약할 수 있겠다. 오투잼이나 캔뮤직 그리고 뒤늦게 출시된 오디션, 알투비트와도 확연이 다른 시스템으로 마니아들이 상당히 많은 편이었다. 당시 어설픈 3D 아바타나 연주모션이 없었으며, 나름 간지나는 뮤직비디오와 오리지널곡들이 수록되었었다. 특히 나같은 입장에서는 그 엿같은 아바타가 엿같은 모션으로 드럼을 두드리는게 없어서 더더욱 마음에 들었다.
(이미지 설명 : DMP1 한정판 구성품)
Dj Max 온라인에 수록된 곡들을 토대로 PSP에 이식되어져 나온 게임이 바로 Dj Max Portable(이하 DMP)이다. DMP 자체 오리지널곡은 몇 곡 없었고 한정판 출시 당시에도 큰 주목 없이 그런대로 팔리나 했었으나, 본격적으로 PSP에서 할만한 게임이라고 입소문이 나기 시작하더니 우후죽순 팔리기 시작했다. 거의 PSP의 필구게임이라고 불릴 정도. 운좋게 한정판을 구하고 PSP로 DMP를 즐기는데, 온라인에서 미친듯이 해서 그런지 크게 어려운 난이도는 없었다. 한창 할 때에는 17단계까지 올콤보로 무난히 깰 정도. 학교에서나 자취방에서나 자주 즐겨했던 게임 중 하나이다.
(이미지 설명 : DMP2 한정판 구성품)
이후에 2007년에는 Dj Max Portable2가 나오게 된다. 가장 많이 팔린 국산 게임 되시겠다. 누적 집계 약 9만장. 매니아들 사이에서는 모든면에서 발전한 DMP2라고도 하고, 그 어떤 차기작도 DMP2의 아성을 넘볼 수는 없었다. FEVER 시스템이 처음으로 도입되었고, 최적화를 통해 고화질 뮤직비디오도 끊임없이 재생되었다. 거기에, 전작 수록곡은 약 60여곡 가운데서 6곡 정도로, 오리지널곡이 대폭 수록되었을정도로 아예 새로운 앨범이 되었다고 보아도 무방. 뮤직비디오만 따로 재생해보고싶은 사람들을 위해 뮤직비디오 감상모드도 존재하며, PSP의 내장 리모컨을 통한 MP3 재생기능도 들어가게 된다. UMD 교체 시스템을 도입하여서 전작인 DMP의 UMD를 끼워도 새로워진 DMP2 플레이 모드로 즐길 수 있는 기능 등, 사용자 편의와 전작에 대한 예우가 끝내줬다. 단지 그나마 까이는 점이라면, 상술 때문이었는지 내용 구성물이 완전히 다른 한정판 두 종류를 내놓았다는 점.
그리고 그 이후에 나온 각종 차기작들.... 그래 있었다고 한다.(하지만 한정판은 지금 봐도 탐날 정도로 퀄리티가 좋았었지)
3. 알고보니 이것도 리듬게임, 파타퐁 (2008년)
(이미지 설명 : 파타퐁 시리즈 패키지 이미지 ; 이런 귀여운 눈깔괴물들)
군대에 들어간 건 07년 3월. 그사이 많은 게임들이 출시했다. 위에서 말한 DMP2도 휴가를 나와서 PC방에서 한정판 예약에 성공한 케이스니까. 그리고 08년. 파타퐁이라는 게임이 출시한다. 이 게임은 내가 다니던 커뮤니티에서 꽤 유명했고, 한글화 발매인데다가 캐릭터들이 상당히 귀엽기에 일단 사고보자, 라는 마인드가 강했다. 그리고 휴가를 다녀와서 게임을 했는데... 오 신이시여, 엄청 귀여운 캐릭터는 둘째치고 알고보니 리듬게임이었던거다. 게임 플레이 스크린샷만 보았을 땐 대체 북소리로 어떻게 리듬을 맞춰 공격하고 방어하며, 회복하는지 이해가 잘 가지 않았는데 직접 플레이를 해보니까 확 체험이 되더라. 그리고 상병휴가 내내 게임을 하고 엔딩보고 놀았다.
(이미지 설명 : 파타퐁2 전투장면)
기본적인 시나리오는 이러하다.
플레이어는 파타퐁족의 '신'으로 묘사된다. 그리고 멸망직전인 파타퐁족이 우연히 신님의 깃발을 얻고, 신의 계시(플레이어의 플레이)에 따라 '그것'을 찾기 위해 군대를 이끌고 여행을 떠난다는 것이다. PSP의 각 버튼마다 북소리가 다르고, 이 버튼들로 북을 연주하여 공격과 방어, 회복, 특수주문 등을 쓰는게 키 포인트. 애드립연주를 제외할 때에는 무조건 4/4 박자로 유지되는게 특성이고, 화면의 테두리가 흰색으로 스프라이팅이 되기에 박자 맞추기는 약간 수월한 편.. 이긴 하지만 북소리와 퐁들의 구호를 들으며 박자를 치는게 더 중요하다. 일정 횟수 이상의 완벽한 북을 치게 되면 FEVER 모드가 발동되며, 평상시보다 더 강한 공격을 할 수 있다.
(이미지 설명 : 파타퐁2의 진화트리)
단순히 여기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각 퐁(파타퐁은 종족의 이름이고, 종족을 구성하는 개개인은 퐁이라 부른다)들은 진화를 할 수 있다. 진화를 함으로 인해 더욱 다양한 부대를 구성할 수가 있다. 방패퐁은 거대퐁으로, 활퐁은 메가퐁으로 진화가 가능하다. 그리고 바람의 방향에 따라 원거리 공격에 제약을 받는 등, 나름 전략적인 요소가 잘 배치되어있다. 전투가 끝나면 마을로 복귀하게 되는데, 이 마을에서는 전투에서 죽은 퐁의 캡(투구 같은 장식물)을 땅에 묻어 되살리거나 미니게임등을 통해 진화에 필요한 각종 재료들을 구할 수가 있다. 이런 세세한 요소들이 모여 파고들만한 나름의 한 축을 담당하기에 크게 지루한 편은 아니다.
(동영상 설명 : 파타퐁 Trailer)
2009년에는 파타퐁2 ~ 동차카가 발매된다. 파타퐁의 인기가 상당해서 그런지, 서양에서도 제법 높은 판매율을 올린 모양. 기본적인 시스템은 전작과 같으며, 히어로퐁의 개념이 등장한다. 히어로퐁은 신(플레이어)이 빙의한 퐁이라는 설정이며, 특수한 공격을 사용 가능하다. 더욱 많은 진화요소가 등장한다.
(동영상 설명 : 파타퐁3 도쿄게임쇼 Trailer)
2010년(일본/북미 발매, 한국은 2011년)에는 파타퐁3가 발매된다. 전작은 리듬요소를 가미한 전략게임이라고 볼 수 있었는데, 파타퐁3에서는 모든 개념이 다 바뀌고 리듬 요소를 가미한 액션 RPG라고 부르는 것이 좋을듯. 세계가 멸망하고 히어로퐁(전작에서는 퐁에 신이 빙의했지만, 여기에서는 신이 직접 강림했다는 설정)과 활퐁, 방패퐁, 창퐁만이 살아남아 악마의 저주를 깬다는 내용. 난이도가 전작들에 비해 상당히 올라갔으며 퍼즐 요소도 대폭 추가가 된 것이 특징. 전작들의 아기자기한 맛은 없어지고 음울한 분위기만이 연출된다.
4. 데굴데굴 쫀득쫀득, 아바마마 오셨다, 어서 굴려라 괴혼 (2006년)
(이미지 설명 : 본작에서는 이정도 크기도 굴리는데..)
특유의 (정신나간)BGM과 (정신나간)캐릭터, (정신나간)배경, (정신나간)게임요소등 어느 하나 제대로 된 모습을 보여주지 않는 (정신나간)게임 시리즈가 있었다. 그리고 역대 초월번역급 최상위권에 당당히 랭크가 되어있다고 보아도 무방할 (정신나간)게임이 있었으니, 바로 남코의 '괴혼'시리즈가 되겠다. 본디 괴혼 시리즈는 플스 시리즈에서 주로 발매 되었으나, 이후에는 XBOX 360등 멀티플랫폼을 지원하기도. 참고로 장르는 무려 '로맨틱 접착 액션' 이다. (정신나갔네)
(이미지 설명 : 왼쪽부터 어마마마, 아바마마, 왕자님. 아니 그니까 제정신이 아니라고)
시나리오는 괴혼 특유의 (정신나간)시나리오와 비슷하게 정신나간 부분이 많다. 지금까지 아바마마가 재채기를 해서 별들을 부셔버렸으니 별을 만들어야한다는 둥, 별별 시나리오가 많았고 이번 작품에서는 '바캉스에 가서 헤엄치다가 그만 동물친구들이 사는 섬을 모두 뭉개버렸으니 쓸모없는 것들을 뭉쳐서 친구들이 살만한 섬을 만들어주라'는 것이 주요 골자. 지구상에 존재하는 수많은 (정신나간)물건들을 붙이고 그것에 각종 (정신나간)해석과 (정신나간)점수를 매겨 동물 친구들에게 선물한다. -_-;
2000년 이전까지는 대부분 모뎀을 통한 PC통신이 전부였다. 나의 경우에는 과도기적인 시대에 아슬아슬 걸쳐있던터라 파란색 바탕의 UI로 된 PC통신보다는, 초고속 모뎀을 통한 화려한 GUI 방식의 PC통신이 주를 이뤘었다. 98년. 처음으로 PC를 구입하면서 아버지가 모뎀을 연결하여 나우누리에 가입을 시켜주셨었다.
이후, 99년이 되고 '스타크래프트', '리니지', '바람의 나라'를 통한 전국적인 온라인게임(당시에는 머드게임이라고 더 많이 불렸었다.) 붐이 일면서 ADSL이 보급되기 시작했다. 지금은 PC를 부팅하면 자동으로 인터넷이 연결되고 100메가 광랜이니 기가광랜이니 하는 수식어를 붙여 홍보했지만, 당시에는 PC를 부팅하고 로그인 절차를 거쳐 ADSL에 접속 후 사용을 하는 방식이었다. 이순신 장군이 활을 쏘며 메가패스, 라는 타이틀을 붙여가며 홍보했던 CF라거나, 배틀넷 랭킹으로 유명했던 '쌈장 이기석'을 앞세워 인터넷을 홍보하기도 했다. 시골에서 살던 나는 메가패스니 뭐시긴 그런거 없이, 단순히 지역 방송국에서 제공해주는 인터넷 회선을 끌어다 쓸 뿐이었다.
PC 게임 잡지도 한달에 한권씩 사면서 새로운 게임이 무엇이 나왔는지 알아보는 재미로 살았다. 그러면서 번들 게임을 즐겨하기도 했고. 그리고 알게된 건, '바람의 나라'와 '리니지'가 잘나갈 게임이었다는 점이다. 나우누리에 접속해서 낯선 사람들과 수다를 떠는 것도 매우 신기했는데 여기서 게임을 같이 한다니?! 그야말로 컬쳐쇼크가 따로 없었다. 우리집에도 ADSL이 보급되었고, 그렇게 온라인 게임을 시작하게 되었다.
이당시에 가장 기억에 남는 게임은 '바람의 나라'와 '리니지' 였다. 어느 게임을 먼저 했는지는 기억이 나질 않는다. 아마, 비슷한 시기에 시작을 했을것이지만 오랜 시간동안 플레이를 한 건 '바람의 나라' 였다. 둘 다 정액 요금제를 기본으로 채택하고 있었지만 컴퓨터 사양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다른 이유 때문이었을까. '바람의 나라'를 오래 하게 되었다.
1. 아기자기한 그래픽, 바람의 나라 (2000년~2004년)
(이미지 설명 : 바람의 나라 로그인 창. 이당시에는 게임 내에서 회원가입을 했고, 실명 인증도 없었다.)
2000년 당시의 바람의 나라는 도스버전의 바람의 나라와 인터페이스가 많이 발전했다고 한다. 물론, 나는 2000년에 첫 시작을 했기에 자세히는 알지 못한다. PC 게임 잡지에서 '로켓맨' 이라는 아이디의 유저가 연재하는 바람의 나라 일기를 재밌게 본게 처음이었고, 그 후에 조랑이의 바람일기 등 수많은 사이트와 PC 게임 잡지, 가이드 북을 통해서 바람의 나라 관련 글들을 많이 보았었다. 지금도 게임마다 가이드북이 출시되는지는 잘 모르겠는데 당시의 게임 가이드북들은 60시간 무료쿠폰 혹은 15일 무료쿠폰 등을 함께 수록하여 부모님 결제 없이 자력으로(?) 게임을 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 되었다. 지금에서야 각종 캐쉬 충전 방식이 등장했지만.
20레벨이 무료체험판 레벨 상한선이었고, 그래서 대부분 19까지 캐릭터를 생성하고 나머지는 수다떠는데 사용했었다. 숱한 아이디들을 만들었다. 지금은 기억도 나지 않을 정도로. 지금에서야 기억나는 아이디 하나는 '피버노바'로, 2002년 월드컵 공인구에서 따온 아이디였다. 내가 지은 건 아니고 동생이 지은 아이디를 뺏어서 플레이를 했었다.
(이미지 설명 : 다른 사람의 캐릭터를 클릭하면 어떤 장비를 꼈는지 다 보였다.)
주로 하는 캐릭터는 주술사. 원거리 공격과 적당한 체력 회복 마법이 있었기에 혼자 사냥하기엔 제격이었다. 전사와 도사, 도적이 별도로 존재했는데 전사는 체력회복 관련 주문이 없다시피하고, 몸빵을 기본으로 하다보니 도사와 함께 파티사냥을 가는 것이 일반적인 방식이었다. 도사는 공격 마법이 거의 없다시피했고, 그러기에 전사와 함께 파티사냥을 다녔다. 도적은? 전사와 주술사 반 정도 섞은 타입이었다. 도사를 파티원에 추가하면 10%의 추가 경험치를 받을 수 있는 나름의 파티 보너스가 존재했다.
(이미지 설명 : 죽으면 성황당에 가서 살려달라고 빌어야함;;)
가이드북이 발매되면서 60시간 쿠폰을 사용하던 건 방학때. 당시 북방대초원이 막 나왔을 무렵이었는지 언젠지 잘 기억도 나질 않는다. 아니 용궁이 막 패치되었을 무렵인가 -_-; 여튼 처음으로 60시간 쿠폰을 사용하면서 19레벨에서 머물던 캐릭터를 20레벨 이상으로 키우기 시작했다. 50레벨 즈음에 입장이 가능한 돼지굴이 막 생겼고, 돼지굴 한바퀴를 신나게 돌고 돈을 모아 또다시 신나게 돌고. 그렇게 70레벨 언저리까지 키웠었다. 이 캐릭터가 아까워서 ARS 전화결제로 30시간 쿠폰같은걸 야금야금 결제하다가 전화비 23만원을 찍고, 어무니에게 등짝 스매싱을 맞고 전화결제를 아예 막아버린 적도 있었다.
(이미지 설명 : 이게 시체 체류당한 피해자의 발악 ㅠㅠ)
아기자기한 그래픽이라고는 하지만, 사실 동시대에 나온 리니지와 비교하면 그냥 허접한 그래픽 나부랭이일 뿐이었다. 그래도 재미있었다. 수백가지에 이르는 서브퀘스트들과 숱하게 많은 사냥터들. 대부분의 유저가 리니지에 빠져나갔지만, 난 그저 바람의 나라에 올인할 뿐이었다. 고레벨들이 숱하게 많았지만 그들이 저레벨들을 미친듯이 도와주곤 했다. 그러나, 이렇게 좋아하던 게임에서 좌절을 맛보기는 또 수없이 맛보았는데 바로 '소환빵'을 당하는 것이다. 99레벨 주술사가 되면 자신보다 레벨이 낮은 캐릭터를 바로 앞에 소환을 할 수 있었다. 만약 자신의 바로 앞이 이동할 수 없는 장애물이라면? 내 캐릭터와 겹치게 되는 것이다. 그럼, 필드에 존재하는 몬스터에게 맞는 상태로 나와 겹쳐지면? 겹쳐진 캐릭터가 맞게 된다. 이 이론에서 등장하여 원칙적으로 PK가 불가능한데 간접적으로 PK를 하는 것이 소환빵이다. 그리고 엿같은 시스템 중 하나로, 죽으면 소지하고 있던 모든 아이템을 다 바닥에 떨구게 된다. 이것이 시체다. 시체 위에 누군가가 올라가 있다면 캐릭터가 겹치지 않는 게임 특성상 먹을 도리가 없었고, 시체가 생성된 지 일정 시간(약 2시간이었던 것으로 기억)이 지나면 아무나 그 시체를 가질수가 있었다.
(이미지 설명 : 넥슨은 다람쥐를 뿌려라, 하면 진짜 다람쥐가 나오는줄로만 알았던 그 시절)
70레벨대 주술사를 만들고, 그렇게나 갖고 싶던 '칠교칠선'을 50만전 주고 누군가에게 사서 장착하고. 저 멀리 중국까지 가서 10만전 주고 사온 멋지구리한(그러나 초보자옷 앞에 앞치마가 달린) 옷을 입고 멋지게 옷을 염색하고 어딘가에 세워두었다가 그만 '소환빵'을 당하고 만 것이다. 2시간동안 애걸복걸해도 그 캐릭터는 내 시체를 돌려줄 생각을 하지 않았고, 결국 저 모든 아이템을 먹고 튀어버린 것이다. 이때부터였을까요. 착하게 게임 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알게된 때가. 지금은 상상도 못하는 부분이지만, 이 당시만 하더라도 처음 본 그 누구라도 일단 '~~님'이 붙고 반말은 전혀 하지 않으며, 웬만한 일이 아니고서야 욕을 하지도 않았던 상황이다. 지금은? 일단 건드리면 부모님 안부부터 물어보는 세상인걸 뭐. 여튼 저렇게나 평화로운 세상에서 내 시체를 체류당하고 모든 아이템을 강탈당하니. 눈이 돌아버릴만했다. 그 이후부터, 나도 돈 좀 있어보이는 캐릭터들을 소환빵해가며 호위호식을 하게 된다. 개중에는 일명 '창고캐'들도 있어서 짭짤한 아이템을 많이 만지곤 했다. 오래전에 소문으로만 듣던 '유리장미'와도 같은 아이템들 말이다.
(이미지 설명 : 이렇게 필드를 꾸미는 사람들도 많았다.)
위에서 잠깐 말했지만, 숱하게 많은 서브퀘스트들이 존재한다. 물론 초창기에는 퀘스트 다운 퀘스트가 존재하지도 않았지만, 이후 온라인 게임이 대세가 되면서 많은 대륙이 업데이트 되었고 자잘한 퀘스트들이 많이 생겼다. 고구려/부여 를 다루던(왜 백제는 없죠?) 게임 답게, 한국의 세시풍속을 따르는 이벤트도 대거 생기고 동화를 따라가는 용궁 퀘스트도 생기게 되었다. 이러한 퀘스트들이 생기고 나서, 승급 전 유저들이 착용할 아이템이 대거 늘어났다. 주홍투구부터 시작해서 인어반지라거나 뭐 그런것들 말이다.
가이드북에서 보던 멋진 아이템을 구해보겠다고, 뇌진도를 만들어보겠다고 벼락맞은 나무 이벤트를 하거나 혹은 운의 제일검, 풍의 제일검과 같이 이펙트가 죽여주는 아이템좀 구해보겠다고 한두고개를 돌아다니기도 했다. 결국, 레벨이 후달려서 아무것도 못했지만.
이 게임을 그만두게 된 건 고등학생이 되고, 새로운 PC를 조립한 후 부터였다. 마비노기라거나, 트릭스터와 같이 새로운 온라인 게임이 대거 출시됨과 동시에, 온라인 게임의 결제 방식 판도 자체가 뒤흔들리게 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1세대 온라인 게임들이 정액요금제를 통한 수익창출 방식이었다면, 2세대 온라인 게임들은 플레이는 무료, 하지만 캐쉬아이템을 출시! 라는 개념을 통해 수익창출을 꾀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지금은 구닥다리 UI를 모두 집어치우고, 게임 엔진도 새로 갈아넣다시피해서 환골탈태한 모습의 바람의 나라가 서비스되었다고 한다. 썩 플레이 하고 싶지 않은 그 느낌. 투박한 도트에 투박한 사운드. 투박한 폰트로 서비스되던 과거의 바람의 나라가 더 끌리고, 그것이 더 기억에 남는다. 멋지게 보이고 싶었으면 새로운 게임을 하겠지. 그렇게, 바람의 나라는 추억속으로 사라졌다.
2. 판타지 세상에서 사는듯 했던, 리니지 (2000년~2004년)
(이미지 설명 : 초반부의 리니지는 이렇게 불편한 UI를 지녔다.)
바람의 나라를 시작한 비슷한 시기에 리니지도 시작했다. 아마 리니지를 조금 더 먼저 하지 않았을까 싶긴 한데. 여튼, 친구와 함께 PC방을 전전하며 플레이를 했던 스타크래프트가 영 마음에 안들었고, 한쪽에서는 칼싸움을 하면서 몬스터를 때려잡는 화면을 보게 된다. 과거에 RPG를 했던 생각이 떠올라 그 게임을 시작하게 되었다. 지금은 어떠한지 모르겠는데, 당시의 리니지 아이콘은 붉은 핏자국에 lineage 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었다. 괜히 무서운 생각이 들었었다.
(이미지 설명 : 그래!! 저놈의 주사위!!!)
처음 한 캐릭터는 요정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지금은 그저 수치를 조절하여 스텟을 결정하였지만 그당시에는 주사위를 굴려서 좋은 수치가 나올 때 까지 노가다를 했어야 했다. 요정에게 필수적인 스텟은 DEX 였고, 이 영문자가 민첩성을 뜻한다는 걸 알게된 건 조금 후의 이야기. DEX가 18이 나와도 CON(컨디션이었을까?)이 낮으면 다시 주사위를 돌리고, 실수로 주사위를 다시 클릭하는 경우도 왕왕 있었다. 그럴 땐 진짜 요샛말로 "빡이쳤다".
당시 유행하던 아이디는 &&아이디&&와 같은 형식으로 이루어져있었다. 리니지 폰트 특성상, & 기호는 뭔가 리본같은 모양으로 출력이 되었다. 이게 참 마음에 들었나보다.
(이미지 설명 : 엔트와 판, 페어리, 아라크네의 모습들)
요정의 숲에서 시작하여 가장 기본적인 아이템을 받아들고 게임을 플레이 했다. 요정답게 숲에는 4대정령(엔트, 페어리, 판, 아라크네)이 존재했고, 맨손으로 해당 정령(가디언이라고 불렸던 것으로 기억한다)을 때리면 아이템을 주곤 했다. 엔트는 나무답게 나무열매나 껍질등을, 페어리는 페어리의 가루를, 판은 뿔이나 털을, 아라크네는 거미줄같은 것을 주곤 했다. 이를 통해서 요정족만의 무기나 방어구를 만들고는 했다. 이걸 전문적으로 노가다해서 돈버는 이들도 많았는데, 그걸 언제하나 싶어서 그냥 레벨 조금 올리고 바로 다른 마을로 이동하고는 했다.
(이미지 설명 : 이샊...!)
글루딘 마을. 당시에는 기란성이 업데이트하기도 전이었다. 글루딘 마을에서 대부분의 사용자들이 모였고, 항상 벅적벅적 했다. 주변에는 슬라임 경기장(이라고 말하는 도박장)이 있었고, 10~20레벨 대의 필드 사냥터와, 40레벨 후반까지도 이용할 수 있는 글루딘 던전이 존재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리니지를 오래한 것도 아니고, 오랜 시간동안 한 레벨이 꼴랑 20레벨 언저리였기에 자세한 건 나도 잘 모르기는 한다.
글루딘 마을로 이동할 때에는 요정의 숲에서 빠져나와 강인지 바닷가인지를 한참 걸어가고, 큰 다리를 한참 건너고, 다시 한참 돌아와서 마을로 도착하곤 했다. 그 와중에 제일 무서웠던 놈은, 바로 오크족 패거리들. 잡놈 오크 한둘과 오크 궁수, 오크 전사로 이루어진 이 무리들은 초보자인 내가 맞딱뜨리면 그냥 일단 찬바닥에 눕고 근처 마을 부활을 해야하는거다. 그 와중에 나름 소중한 아이템이라도 떨구면? 그냥 게임 접고 싶어질 정도. 이는 그나마 다행인게, 제일 무서운 건 바로 셸로브였다. 큰 거미모양의 몬스터인 셸로브는 소름끼치는 이동속도와 소름끼치는 생김새, 소름끼치는 소리로 공격을 한다. 아니 그니까 음파공격이 아니라... 공격할 때 나는 소리가 소름끼친다. 칠판을 손톱으로 긁는 소리와 비슷한 느낌. 얘도 저 멀리서 보이면 그냥 뒤졌구나. 라고 생각하면 마음이 편하다.
(이미지 설명 : 버그베어촌. 버그법사가 소환한 버그베어를 잡고 경험치를 획득.)
글루딘 마을에 도착해서는 골밭이라고 불리는 사냥터에 갔다. 구울, 좀비, 스켈레톤, 해골, 라이칸스로프와 같은 저레벨대 몬스터가 자주 보이는 곳. 여기에서 누군가가 한대 치고 막 도망다니면 같이 도와주곤 했다. 이렇게 조금씩 경험치를 쌓아가고 레벨업을 했다. 이게 무슨 소용이 있는지, 지금은 도저히 상상이 안가지만. 어느날은 골밭에서 사냥을 하다가 카오틱 유저가 죽고, 아이템을 떨군걸 한두갠가 주워먹은 적이 있었다. +4 활골무, +4 장화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리니지에서 인챈트라는 개념은 그저 장비를 강화시키는 수준이었고, 저게 얼마나 했는지 지금은 알 도리가 없다. 그 유저가 귓말로 죽인다 어쩐다 하는걸 듣기가 무서워 그걸 먹고 한동안 잠수를 안탄 적도 있었다.
(이미지 설명 : 제일 유명했던 에볼 PK단)
요정으로 플레이를 하다가 언젠가는 마법사가 멋져보여서 마법사를 키운 적도 있었다. 리니지를 접을 즈음에는 마법사에 여자 캐릭터가 생성되었지만, 내가 할 때에는 오로지 남자 캐릭터만이 존재했다. 아직도 기억나는 마법사의 마법. 에너지 볼트(줄여서 에볼)와 쉴드, 텔레포트. 마나포션도 존재하지 않았던 때라서 전투를 한창 하다보면 마나 회복 시간(마탐이라고 불렀다.)을 갖고는 했다. 역시, 접을 즈음에는 마나 회복 지방이 같은게 생겼는데 그게 지금은 무진장 비싸다고 들었다. 에너지 볼트 법사로 플레이를 하면서 재밌는 경험을 많이 했다. 에볼PK라거나, 그 무서운 셸로브를 만났을 때 텔레포트로 도망을 친다거나. 셸로브를 마을로 끌고 들어와 PK를 시도한 적도 있었다. 그래봤자, 10레벨을 넘기기가 힘들었다. 게임을 잘 몰랐을 때니까.
리니지도 그당시에 가이드북이 존재했다. 바람의 나라와 같이 여행기가 실리기도 했고, 레벨별 사냥터가 명시되어있기도 했다. 대부분의 아이템을 외울 수 있을 정도로 아이템 수가 적었던 리니지. 꿈의 아이템이었던 메일 브레이커. 그리고 재미있는 아이템이라 생각했던 악운의 단검. 이런것들을 갖을 수는 없었다. 그러기엔 내가 게임을 너무나도 못했다. 기억에 따르기로, 15레벨의 마법사가 배울 수 있는 라이트닝 마법이 정말로 멋져보였다. 뭐 그런데, 그정도까지 키울 수 없었다는게 문제지.
기사를 플레이 할 적에는 그당시 가성비가 황제였던 양손검을 착용하고 다녔다. 워낙에 드랍률이 높았던 것인지, 활용도가 없었던 것인지 1천아덴인지 1만아덴인지 하는 싸구려 아이템이었다. 방패를 착용할 수는 없었지만. 여기에 판금갑옷, 이 또한 가성비 황제였던 판금갑옷을 입고 플레이를 했다. 주로 무엇을 했는지는 기억도 나질 않는다. 사막에서 개미를 잡았던 기억만이 날 뿐.
그리고 오랜 시간 후 2006년경, 핸드폰이 우후죽순 팔려나갈 때 리니지와 연동되는 모바일 게임이 있었다. 흔히 보이는 게임이었고, 플레이를 하면 한달에 몇만 아덴씩 주고는 했다. 이 아덴을 차곡차곡 모아서 플레이를 하지도 않던 리니지에 접속을 하여 장비를 강화하고는 했다. 레이피어를 어디서 주워왔는지 기억도 안나는데, +6 레이피어를 만들고 나머지 잡다한 장비를 하나하나 강화를 하다가 어느순간부터는 접속도, 모바일 게임도 안하기 시작하더니 결국 게임을 접고야 만다.
여담이지만, 리니지는 일본의 텍스트 기반 게임인 닷핵을 모방했다. 게임 초기의 각종 아이템 이름들, 베르라거나 줌, 일본도, 대형몹/소형몹 공격력 등등. 이당시에는 저작권이라는 개념이 참 희박하던 시절이긴 했지만 한편으론 좀 거시기 하다는 느낌도 지울 수 없는건 사실.
3. 게임 주제에 수학도 필요할 줄은 몰랐다, 포트리스 2, 3 (2000년~2004년)
(이미지 설명 : 포트리스2 Blue Forever 버전 이미지. 사실 구버전이랑 크게 다를건 없었다.)
돈도 없던 학생시절, 바람의 나라와 리니지는 그리 오래 플레이를 할 게 못되었다. 정액을 끊을 수 없었고, PC방 가기도 힘들었으니까. 그당시 내가 살던 고향의 PC방은 좁아터진 좌석에 비싼 가격을 유지했다. 돈을 많이 들고 와도 누군가가 뒤에서 대기타고 있으면 연장하기도 힘들었던 그 시절. 그래서 집에서 대부분의 시간동안 PC 패키지 게임을 즐겨했다. 공짜 온라인 게임이 이런 니즈에서 튀어나왔을지도 모른다.
CCR 에서 만든 포트리스 2는 그당시에 그야말로 대박을 쳤다. 스타크래프트만이 TV 속 리그를 점령할 줄 알았건만, 간혹가다 포트리스2 리그도 열리고는 했다. 아기자기한 탱크들이 나와서 포탄을 쏘며 상대를 죽이는 그러한 게임. 단순한 게임이었고, 무료였고. 그러기에 사람들이 더더욱 몰렸으리라 생각된다. CCR은 무료게임으로 운영이 되나, PC방과 같은 사업자에게는 돈을 거두는 형태로 운영비를 충당했다. 지금에서야 당연한 논리였지만, PC방이 막 보급되기 시작했던 그 당시에는 이게 말이 되는 소리냐고 다들 한목소리로 불매운동을 하네 뭐하네 반발이 장난 아니었다. 결국 PC방 사장님들의 초강수로, CCR 포트리스2 거부운동을 열고 대다수의 PC방에서는 포트리스2를 플레이 할 수 없다는 안내문을 붙이고야 만다. 이에 비해 넥슨이나 NC는 어떻게 대처를 했는지, 바람의 나라와 리니지는 계속 플레이가 가능했다. 아마도 사용자가 많았으니까 PC방 사장님들이 받을 수 밖에 없는 입장이었을지도.
(이미지 설명 : Valley 맵에서 Secwind 탱크)
여튼, 포트리스1이 존재한다고는 하는데 실질적으로 스크린샷 찾기도 힘들다. 아기자기한 탱크들. 그리고 바람의 방향, 세기에 맞춰 힘을 조절하고 각도를 조절하여 상대방에게 명중. 이건 간단했다. 문제는 이론과 실전은 항상 다르다는 것. 해골부터 시작하는 계급이 차츰 올라 마침내 금별을 달았을 때. 그 누구보다도 환호했다. 나중에 명절 때, 사촌형이 하는 포트리스2를 보고는 놀랐다. 왕관이었으니까. 세상은 넓고 고수는 많다는 걸 어린나이에 알게 되었다.
(이미지 설명 : 게임 로비는 대충 이런 모습. 색상에 따라 팀이 나뉘어지는 방식.)
주로 하던 캐릭터는 문어탱이라 불리는 Secwind. 초창기에 하던 캐릭터는 멀탱이라 불리는 MultiMissle Tank 였다. 문어탱은 체력이 50% 이하가 되면 공격력이 강해지는 특징이 있었다. 대부분의 탱크는 20% 였던 것으로 기억. 멀탱의 경우, 특수무기는 9발의 작은 탄환이 날아가는데 이게 넓게 퍼지기에 맞추기가 쉽다는 이유로 초보자들에게 권하고는 했다. 나름 포트리스2를 좀 하다보니, 맞춘다고 전부는 아니니까 이걸 추천해준 놈 가서 명치를 존나 세게 때리고 싶었을 정도.
(동영상 설명 : Valley 맵, There is something about super tank)
분홍빛 구름이 두툼하게 깔려있는 SKY라는 맵과, 작은 얼음덩어리 두어개로 이루어진 Valley 라는 맵. 그리고 내가 좋아하던 스핑크스 맵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SKY 맵은 OST 제목이 참으로 인상적인데, There is something about super tank 라는 제목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발랄한 리듬이 특징.
(이미지 설명 : 포트리스3 로그인 화면. 좌/우의 탱크가 공성길드용 탱크)
2002년경에는 포트리스3 패왕전을 출시한다. 대부분의 탱크가 그대로 나오고, 신규로 6개의 탱크가 추가된 것이 특징. 길드전용의 특수탱크는 두 종이 있다. 맵도 대부분의 맵이 새로 추가가 되었으나, 기존에 인기가 좋았던 맵은 그대로 나오기도. 포트리스2와 큰 차이는 없으나, 의외로 오밀조밀한 부분에서 많이 변경되었다. 각종 모드전이 추가가 되었고, 발사시 예상 탄각이 나오는 것도 마음에 들었다. 이것 좀 하자, 싶었는데 얼마 안가 서비스 종료가 되었다. 듣자하니, 출시 2년 즈음부터 각종 핵이니 버그니가 판을 치더니 유저가 뚝뚝 떨어져나갔다고. 그래서 그런지 얼마 안했는데도 랭킹이 죽죽 오르더라.
(이미지 설명 : 리뉴얼된 스핑크스 맵. 캐쉬 아이템이 대거 늘어난 점이 변화점이라고 보면 되려나...)
그렇게 포트리스3가 출시되면서, 포트리스2가 죽느냐 했더니 다시 인기가 많아지고, 기존의 버그니 뭐시기니를 뜯어고친 포트리스2 Red, Blue 등의 버전이 연이어 패치된다. 최후에는 방폭핵과 각종 버그들로 몸살을 앓았고, 포앤구한다는 사람들이 넘쳐흐르면서 서비스가 종료된 게임. 듣자하니 2011년에 Fortrix 3D가 나온다는 떡밥이 있던데 이딴거 내놓지 말고 제대로 좀 해주었으면 좋겠다. 요새 스마트폰이 넘쳐나는데 가볍게 단발성으로 하기 좋은 게임이기도 하니까.
4. 넥슨 게임은 다 비슷했지만.. 이건 아니었던, 일랜시아(2001~2002)
(이미지 설명 : 일랜시아 게임 모습)
온라인 게임 중에 '울티마 온라인' 이 있다. 이 게임이 엄청나게 유명한데 그 이유가... 일단 북미에서 시작한 온라인 게임이기도 하거니와, 게임 시스템 자체의 자유도가 무지막지하게 높다는 것이다. 가령, 단검을 들고 천을 클릭하면 붕대가 생기고, 이 붕대를 들고 캐릭터를 클릭하면 부상률이 회복되고. 지금에는 이런게 NPC를 통해 제작하거나 혹은 관련 제작 스킬이 있어야 했고, 일부 게임에서나 통용되던 자유도였다. 그러나, 이게 무려 20년 전 게임이라는게 충격과 공포라는거지. 그렇게 높은 자유도를 지닌 게임을 하위호환한 게임이 바로 일랜시아라고 볼 수 있다. 마비노기는 아주 나중에 나온 높은 자유도의 게임일 뿐.
(이미지 설명 : 수련장이라는곳에서 어빌리티 수련도 가능했다.)
바람의 나라와 어둠의 전설은 사실 비슷한 느낌의 게임이었다. 도트도 그러했고, UI도, 게임 방식도 매우 흡사했으니까. 그런데 일랜시아는 일단 그래픽부터가.. 확연히 달랐고, 시스템도 많이 달랐다. 일단 캐릭터 레벨이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았고, 스킬레벨과 흡사한 어빌리티 레벨이 존재했다. 낚시면 낚시, 전투면 전투, 무기면 무기, 이렇게 모든 분야에 대한 어빌리티 레벨이 있었고 해당 스킬을 사용하면서 어빌리티 레벨을 올리는 방식이었다. (이는 마비노기와 매우 흡사하다.)
초보자였던 시절에 했던 많은 돈벌이들은 닭을 잡아서 손질되지 않은 닭고기를 얻고, 이를 푸줏간에 가서 손질된 닭고기로 만들어 되파는 일이었다. 이렇게 돈을 하나하나 모으고 보석들도 모으고. 대체 보석을 어디에 썼는지 기억도 안나지만, 아이템을 상점에서 하나하나 맞추고. 그렇게 몬스터를 잡고 반복을 하면서 장비 아이템을 맞추는 재미로 했더란다.
PK도 가능했고, 그냥 상대방을 때리기만 하면 되는 게임이었다. PK에 대한 패널티가 존재하지 않는 그런 게임. 나중에는 다른 마을로 이동해서 푸푸라는 몬스터를 잡다가 '고태도' 라는 나름 워너비 아이템을 맞추게 되었고, 좀비가 텨나오는 던전에 패기좋게 들어갔다가 패망, 이후로 하지도 않는 게임이 되었다. 중학생때 잠깐 하던 게임이었는데 당시에 빠져들만한 게임이 없어서 이것저것 설치 후 플레이를 하다가 나름의 재미를 느껴 빠지게 된 게임. 이와 비슷한 게임으로 마비노기가 존재한다. 마비노기는 이 게임과 다르게 즐길게 매우 많아서 엄청나게 오랫동안 플레이를 했지만.
매우 빡치는 일 중 하나로, 캐릭터 크기에 비례해서 드랍템의 크기가 결정되었다. 그러니까 무슨말인고 하니, 캐릭터가 게임 속에서 약 20px 크기로 존재한다면, 달걀은 그 비율에 맞춰 약 2px 정도의 크기로 존재하는거다. 땅에 드랍되면? 진짜 2px 정도 희끄무리한 것이 달걀이었고, 그걸 일일히 더블클릭해야 획득할 수 있었다. 아주아주 엿같은 방식. 줍기 단축키도 존재하지 않았고, 아이템이 워낙 작게 표시가 되니 드랍이 되었을 때 알아차리기도 힘들었다.